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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

과학, 심리학, 두뇌 2010/09/15 05:51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자들이 주목한 주제 중의 하나는 "변화"였습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보면 변화가 없고, 어떻게 보면 변화가 많은데,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실체는 무엇이고 변화는 왜, 어떻게 생기는지가 철학의 중요한 주제였죠.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를 철학적 사고의 중심에 놓은 대표적인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보았는데, 불은 고정된 형체가 없고 순간순간 모양이 변하죠. 그가 보기에 세상은 불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세상이 늘 변화한다면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어제 일어난 일을 반복하려고 보면 오늘은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가 말한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라는 말은 이러한 신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건넌 강을 오늘 건너려고 한다면 어제 내가 건넌 강물은 이미 흘러가버렸기 때문에 다시 건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따른다면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을 뿐 아니라, 같은 강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한 곳을 흐르는 강이 같은 강이 아니라면, 이 강을 하나의 이름(예를 들어, 한강)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변화를 무한히 강조하다 보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변하지 않는 실체를 설명하지 못하게 됩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동시대를 산 엠페도클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세상에 변화란 없고, 만물은 고정된 상태로 영원히 지속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변화란 어떤 존재가 자신이 아닌 존재(what is not)로 바뀐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아닌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이 부분은 한국어로는 설명이 좀 힘든데, 영어로 생각해 보자면 what is not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뜻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죠. 엠페도클레스가 이 두 가지 의미를 혼동했다고 보면 이해가 되긴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 사람도 많죠). 따라서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로 바뀔 수는 없고, 그렇다면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물론 그의 철학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크게 봐서 그가 변화를 부인하였다는 점은 학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변화를 부인한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동시에 부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보고 듣고 만지는 감각을 통한 인식이 참된 지식을 낳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 눈에 세상 만물이 변화한다고 해도, 이는 감각의 한계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뿐이죠. 이처럼 극단적인 주장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개념으로 변화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의 철학에서 변하지 않는 실체는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고, 우리는 변화가 많은 그림자의 세계, 허상의 세계에 삽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많은 세계에서도 우리가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이 이데아를 본떠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다양한 모양의 의자를 모두 의자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각 의자가 의자의 이데아를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이처럼 플라톤의 철학은 세상의 변화도, 변화하지 않는 실체도 동시에 설명해줍니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와 불변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잠재력은 사물 내부에 있는 변화의 가능성입니다. 물론 하나의 사물 속에 있는 "가능성"은 다양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잠재력이란 상황이 적절하고, 방해하는 요소가 없을 때 자연적으로 실현되는 가능성, 즉, 좋은 가능성입니다(오늘날도 "잠재력이 있다."라는 말은 늘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죠).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변화는 잠재력이 실현되는 과정이고, 이러한 변화는 무질서한 과정이 아니라 존재의 내부에 있는 질서를 따른 과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를 "물질세계의 한계에서 오는 문제"라고 본 철학자들과 다르게,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잠재력"이라는 그의 개념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아실현"이라는 욕구를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단지 내가 잘난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아실현은 내 속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뜻입니다. 즉, 내 잠재력을 실현하고 싶다는 뜻이죠.

잠재력의 실현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많은 인간, 특히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개념입니다. 대부분 젊은이는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남을 놀라게 할 만한 재능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할 때, 그가 감독으로서 남을 깜짝 놀라게 할 재능을 이미 보였을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대부분의 감독 지망생은 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꿈꿉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 가게 점원 쿠엔틴 타란티노나 트럭 운전사 제임스 캐머런이 영화계에 투신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속에 있는 감독으로서의 잠재력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잠재력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에 따른 모험은 창조적인 직업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죠.

잠재력의 실현은 종교적으로 볼 수도 있고, 종교를 배제하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이 "열매를 맺으라"였다고 기록합니다(창세기 1장 28절). 열매는 나무에 숨은 잠재력의 표현이고, 그렇다면 이 명령은 "너의 잠재력을 발휘하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맡긴 후, 나중에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는 이야기)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잠재력의 실현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유명한 철학자 니체는 신이 없는 세상에 인생의 의미를 찾다가 "초인"(Übermensch)이라는 개념에서 살아갈 방향을 찾았습니다. 그는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했듯, 인간은 인간 이상의 존재로 진화할 잠재력이 있고, 이러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의미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신은 부인했을지라도, 잠재력 실현의 가치는 부인하지 않은 셈이죠.

니체의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 칼 융은 잠재력 실현의 단위를 인류에서 개인으로 바꿔 놓습니다. 그는 인간의 심리 발달 과정을 개인화(individu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개인화란 집단에서 구분되지 않던 인간이 자신만의 특성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물론 이러한 개인화는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감추어진 잠재력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봐야 하죠. 융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내 인생은 무의식이 자기를 실현한 이야기다(My life is the story of the self-realization of the unconscious)"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잠재력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잠재력을 지녔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없다면, 나는 그 방향으로 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에 비해 내 안에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면, 특히 그러한 잠재력이 크다면, 나는 이러한 잠재력을 발휘해야 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마음속에 늘 실패감과 좌절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잠재력의 개념을 무시한다면, 인간은 삶의 방향을 잃고 맙니다. 만약 내 안에 나만의 고유한 잠재력이 없다면, 모든 사람은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야겠죠. 이는 융이 말한 개인화와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는 개인의 잠재력을 무시한 획일화의 좋은 예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 잠재력이 있고, 이러한 잠재력을 잘 발휘해 돈을 번다면 좋지만, 그 사람의 잠재력이 돈의 영역과 전혀 상관없는데 돈을 많이 번다면 그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물론 돈에 관한 잠재력이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기도 불가능에 가깝겠죠).

잠재력을 중요시한다면, 인생은 모험이 됩니다. 잠재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눈에 보인다면 이는 이미 현실(actuality)이기 때문이죠. 잠재력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늘 직관과 믿음에 속한 영역입니다. 따라서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길을 따라가는 모험이죠. 이러한 모험에 대한 동경은 흔히 여행의 욕구로 나타납니다. 여행은 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기에 모험이고, 이러한 모험은 숨어 있던 잠재력이 드러나는 계기가 됩니다.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 전 흥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이러한 여행이 인생을 바꿀 잠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재력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만약 내가 지금 잠재력이 없는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면 결국 이 일을 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진정으로 내가 잘할 소질이 있는 분야는 개발하지 못하겠죠. 반대로, 내가 진정으로 잠재력이 있는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하려면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느 쪽도 쉬운 결정은 아니고, 어느 쪽도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하죠. 하지만, 최소한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할 때는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의 틀을 놓고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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